
반도체 산업은 수많은 원재료와 고순도 소재에 의존하는 글로벌 공급망 기반 산업으로, 특정 국가나 기업에 편중된 소재 수급 구조는 생산 리스크를 초래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입니다. 특히 고난도 공정에 사용되는 고순도 불화수소(HF), 포토레지스트, 실리콘 웨이퍼, 타깃 메탈 등은 제조 공정상 대체가 어려운 핵심 소재로, 이들 공급망에 이상이 생기면 생산 차질, 품질 저하, 납기 지연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최근 미중 기술 분쟁, 일본의 수출 규제, 전 세계적인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 팬데믹 등 외부 변수로 인해 반도체 공급망 안정성 확보의 중요성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소재 공급망의 다변화’는 반도체 산업 전반에서 최우선 전략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반도체 소재 공급망의 현재 구조와 문제점, 다변화를 위한 주요 전략, 실제 추진 사례와 향후 과제를 중심으로 상세히 살펴봅니다.
반도체 소재 공급망의 현황과 취약성
현재 글로벌 반도체 소재 공급망은 특정 지역과 소수 업체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순도 불화수소는 일본의 스텔라 케미파, 모리타 화학 등이 글로벌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고감도 EUV용 포토레지스트도 일본 JSR, TOK, 신에츠화학 등이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실리콘 웨이퍼의 경우 일본과 독일, 대만 업체들이 대부분을 공급하며, 타깃 메탈 및 특수가스도 벨기에, 미국, 중국 일부 업체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평시에는 효율적인 분업 구조로 작용하지만, 지정학적 분쟁이나 수출 규제, 물류 대란 등의 상황에서는 치명적인 병목 현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9년 일본의 대(對)한국 수출규제 조치로 인해 고순도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등의 공급이 중단되며 국내 반도체 산업이 큰 충격을 받았던 일이 있습니다. 또한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로 인해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특정 소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대만 해협 위기 시 시화학 제품의 공급도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복잡한 리스크 구조 속에서 반도체 기업들은 생산 안정성과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급망 다변화를 본격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소재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핵심 전략
소재 공급망 다변화 전략은 단순히 공급처를 늘리는 수준이 아니라, 자국 내 생산 확대, 공급국 분산, 기술 국산화, 전략적 재고 확보, 글로벌 파트너십 확대 등 다양한 방법이 통합적으로 추진되어야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첫째, 가장 기본적인 전략은 ‘복수 공급선 확보’입니다. 핵심 소재에 대해 하나의 공급처가 아닌 2~3개국 이상의 공급처를 마련하여 특정 국가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구성합니다. 둘째, 기술 국산화 및 내재화도 필수 전략입니다. 고순도 화학물질, CMP 슬러리, 고내열 필름 등 그동안 수입에 의존하던 핵심 소재를 국내 기업이나 연구기관과 협력해 독자 개발하거나 기술 이전을 통해 국산화함으로써 자립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셋째, 전략적 재고 확보도 중요합니다. 불확실한 수급 상황에 대비해 일정 물량 이상의 재고를 보유함으로써 갑작스러운 차질에 대응할 수 있으며, 이와 관련한 정책적 지원도 병행되고 있습니다. 넷째, 글로벌 공급사와의 협력 확대입니다. 소재 공급업체와 장기 공급 계약을 체결하거나, 공동 R&D를 통해 기술 및 공급망을 공동으로 확보하는 방식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역할도 중요합니다. 소재 산업은 단가 경쟁이 치열하고 초기 투자비가 큰 특성이 있어 민간 주도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R&D 지원, 세제 혜택, 정책 자금 등으로 공급망 다변화를 뒷받침해야 합니다. 실제로 한국, 미국, EU,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은 반도체 소재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규정하고 집중 투자와 지원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주요 국가 및 기업의 공급망 다변화 사례
공급망 다변화는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의 공통된 과제로 인식되며, 각국과 주요 기업들이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 수출규제 이후 고순도 불화수소를 중심으로 국산화에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를 보였으며, 이후 솔브레인, 램테크놀러지 등 국내 소재 기업의 투자 확대와 품질 고도화를 통해 해외 의존도를 줄였습니다. SK머티리얼즈, LG화학, 한화솔루션 등도 반도체용 특수가스 및 화학소재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이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소재 기업과 공동 개발 및 테스트 시설을 운영해 안정적인 수급체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CHIPS Act를 통해 반도체 제조뿐만 아니라 소재 및 장비 공급망도 포함하여 전략적으로 지원하고 있으며, Dupont, Entegris, Air Products 등 미국 소재 기업의 R&D 투자도 활발합니다. 일본은 자국 소재 산업을 수출 무기로 활용함과 동시에 안정적 공급망을 위해 동남아 국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으며, 유럽은 ASML 중심으로 소재 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국가 주도 하에 ‘반도체 굴기’ 전략을 통해 소재 국산화율을 높이고 있으며, 장쑤화학, 상하이실리콘, 화훙 등의 기업들이 소재 생산 설비 확충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처럼 각국의 대응은 경쟁이자 협력의 관계 속에서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공급망 안정성은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닌 국가와 산업 전체의 전략 이슈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반도체 소재 공급망의 다변화는 단기적인 수급 안정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기술 자립과 산업 경쟁력 강화에 핵심적인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를 위해 정부, 대기업, 소재 전문기업, 학계, 연구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하여 지속적인 기술 개발, 투자, 정책 연계를 추진해야 하며, 불확실한 글로벌 정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급망의 복원력과 유연성을 확보한 기업만이 미래 시장에서 안정적인 성장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