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는 국가 안보와 산업 경쟁력의 핵심으로 떠오르며, 글로벌 공급망에서 전략 자산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일부 국가에서는 자국의 기술 우위를 유지하거나 특정 국가에 대한 견제를 목적으로 반도체 관련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수출 규제는 단순히 상거래 제한을 넘어, 국제 정치와 경제 안보, 기술 패권 경쟁 등 복합적인 요소가 얽혀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대표적인 반도체 수출 규제 사례들을 분석하고, 그 배경과 영향, 향후 전망까지 살펴봅니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미국은 자국의 첨단 반도체 기술이 중국의 군사 및 첨단 산업 발전에 활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중국 수출 규제를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습니다.
① 화웨이 제재 (2019~현재)
2019년 미국 상무부는 화웨이를 수출 통제 대상(Entity List)에 등록하여 미국 기술을 이용한 반도체 제품이나 장비를 화웨이에 수출할 수 없도록 제한했습니다. 이 조치로 인해 퀄컴, 인텔 등 미국 기업뿐 아니라 대만 TSMC 같은 글로벌 파운드리 업체들도 화웨이용 칩 생산을 중단했습니다. 이로 인해 화웨이는 자체 칩(Kirin) 생산에도 큰 차질을 겪으며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이 급감했습니다.
②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 금지 (2020~2023)
미국은 2020년 이후,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첨단 장비(특히 10nm 이하 미세공정에 필수적인 장비)에 대한 중국 수출을 금지하는 조치를 강화했습니다. ASML(네덜란드), 도쿄일렉트론(일본) 등 해외 장비 기업도 미국 기술이 일부라도 포함된 경우에는 미국 규제를 따라야 하므로, 중국 반도체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③ AI/고성능 GPU 수출 통제 (2022~)
2022년부터는 AI 반도체, 특히 NVIDIA의 A100, H100 GPU 같은 고성능 AI 칩셋의 중국 수출도 제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중국의 인공지능 기술 발전을 억제하려는 전략으로, 중국 기업들이 자체 GPU 개발에 집중하도록 만들었으며, 미국과 중국 간 기술 분할(디커플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대한국 수출 규제 사례 (2019)
2019년 일본 정부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수적인 3개 품목에 대해 수출 규제를 발표했습니다. 이는 반도체 수출 규제가 정치·외교 이슈와도 긴밀히 연관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① 규제 품목: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이 세 가지 품목은 반도체 세정, 노광 공정, 디스플레이 제조에 필수적인 소재로, 당시 일본이 세계 공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들 품목을 '포괄 허가' 대상에서 제외하고, 건별 심사로 전환함으로써 수출을 지연시켰습니다.
② 한국 반도체 산업에 미친 영향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단기적으로 생산 차질 가능성에 직면했지만, 빠르게 소재 다변화 및 국산화 전략을 추진하며 위기를 대응했습니다. 이는 한국 반도체 생태계가 공급망 리스크를 체감하고 자립화 방향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③ 이후 전개
2023년 한일 정상회담 이후, 일본은 해당 수출 규제를 해제했으며, 양국 간 반도체 협력이 다시 강화되는 흐름으로 전환되었습니다. 이는 외교 협상의 중요성과 수출 규제가 양국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네덜란드의 ASML 장비 수출 통제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기업 ASML은 세계 유일의 EUV(Extreme Ultraviolet) 노광 장비 제조업체로, 최첨단 미세공정에 필수적인 장비를 공급합니다. 미국의 요청과 정치적 압박 속에서 네덜란드 정부는 자국 기업의 중국 수출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① 2019년 이후 중국 수출 금지
ASML은 2019년부터 EUV 장비의 중국 수출 허가를 받지 못했고, 2023년부터는 일부 DUV(Deep Ultraviolet) 장비에 대해서도 미국의 수출 제한 조치에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따라 SMIC, YMTC 등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첨단 공정 개발이 큰 제약을 받고 있습니다.
② 글로벌 공급망의 민감성
ASML 장비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 대부분이 사용하는 핵심 장비이기 때문에, 네덜란드의 수출 정책은 전 세계 반도체 산업의 흐름에 영향을 미칩니다. 특히 미세공정 경쟁에서 EUV 장비 확보 여부가 핵심이 되면서, 장비 수출 제한은 곧 기술 격차 확대와 직결됩니다.
결론적으로 반도체 수출 규제는 단순한 무역 정책을 넘어, 기술 주도권, 국가 안보, 외교 전략 등이 결합된 복합적 이슈입니다. 미국의 대중국 수출 제한,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 네덜란드의 장비 수출 통제 등은 각국의 전략과 외교 방향에 따라 민감하게 움직이며, 공급망 재편과 기술 자립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AI 반도체, 전력반도체, 양자컴퓨팅 칩 등 새로운 분야에서도 수출 규제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기술 내재화, 소재·장비 자립, 글로벌 협력 네트워크 강화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