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 제조 공정에서 회로 패턴을 웨이퍼 위에 정밀하게 전사하는 핵심 단계는 '노광(Exposure)'입니다. 노광 공정의 정밀도는 반도체의 미세화 수준을 결정하며, 제품 성능과 직결됩니다. 현재 노광 기술은 주로 두 가지 방식으로 구분되며, 기존의 DUV(Deep Ultraviolet, 심자외선) 기술과 최신의 EUV(Extreme Ultraviolet, 극자외선) 기술이 그것입니다. DUV는 수십 년간 반도체 제조를 이끌어온 표준 기술이었으나, 회로 선폭이 10nm 이하로 진입하면서 기술적 한계에 직면하였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바로 EUV입니다. 본문에서는 EUV와 DUV 노광 기술의 원리, 구조, 공정 방식의 차이점과 각 기술이 반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까지 비교 분석합니다.
노광 기술의 원리와 DUV 방식
노광은 감광액(포토레지스트)이 도포된 실리콘 웨이퍼에 빛을 쏘아 마스크에 새겨진 회로 패턴을 전사하는 공정입니다. DUV 기술은 ‘Deep Ultraviolet’이라는 이름 그대로 248nm(KrF), 193nm(ArF)의 자외선을 이용해 회로 패턴을 형성합니다. DUV는 파장이 비교적 긴 빛을 사용하기 때문에 패턴의 해상도와 정밀도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으며, 10nm 이하 공정에서는 이 빛의 파장으로 미세한 회로 구현이 매우 어렵습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고굴절률 렌즈를 사용하는 액침(Immersion) 기술이나, 이중/삼중 패터닝(멀티 패터닝) 기술이 함께 적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193nm ArF 액침 노광은 DUV의 대표적 고급 기술로, 렌즈와 웨이퍼 사이에 물을 넣어 빛의 굴절률을 높이고 더 미세한 선폭 구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보완 기술은 공정 복잡도와 장비 수 증가, 비용 상승, 수율 저하 등의 문제를 일으켰고, 기술 한계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어 왔습니다. 또한 멀티 패터닝 방식은 회로 정렬 정밀도에 따라 큰 오차가 발생할 수 있어 7nm 이하 공정에서는 사실상 사용이 어렵다는 한계도 있습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더 짧은 파장을 사용하는 EUV 기술입니다.
EUV 노광 기술의 원리와 특징
EUV는 ‘Extreme Ultraviolet’이라는 명칭대로 파장이 13.5nm에 불과한 극단적으로 짧은 빛을 사용하는 노광 기술입니다. 이는 기존 DUV 대비 약 1/14 수준의 파장으로, 더 미세한 회로 패턴 구현이 가능해지고, 멀티 패터닝 없이도 7nm 이하의 선폭을 단일 공정으로 구현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집니다. EUV의 가장 큰 장점은 해상도 향상과 공정 단순화입니다. 단 한 번의 노광으로도 복잡한 회로 패턴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에 수율이 높고, 전체 공정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스크 정렬 오류 문제도 줄어들며, 고성능 저전력 칩 구현에 유리합니다. 하지만 EUV는 공정의 복잡성과 장비의 난이도 측면에서 여전히 큰 도전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EUV 광원은 레이저를 이용해 주석(Sn)을 플라즈마화시켜 극자외선을 생성하는데,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빛의 양(광 출력)이 제한적이어서 생산 속도가 느릴 수 있습니다. 또한 EUV는 공기 중에서 흡수가 되기 때문에 진공 상태에서 공정을 수행해야 하며, 렌즈 대신 반사 거울로 이루어진 반사식 시스템을 사용해야 합니다. 이로 인해 장비의 정밀도가 매우 높아야 하고, 유지비 및 초기 투자비가 막대한 수준입니다. 또한 EUV용 마스크, 포토레지스트 소재 개발 등도 여전히 기술적인 도전 과제로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TSMC, 인텔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5nm, 3nm 공정에 EUV를 도입하며 차세대 기술 표준으로 정착시키고 있습니다.
DUV와 EUV의 비교 및 산업적 영향
DUV와 EUV는 각각의 특성과 장단점이 존재하며, 공정 노드에 따라 선택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DUV는 여전히 28nm~14nm급 공정에서는 경제성과 기술 성숙도 측면에서 유리하여 널리 사용되며, 장비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공정 라인의 안정성이 높습니다. 반면, EUV는 7nm 이하 고성능 공정에 필수적인 기술로, 동일 면적에서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할 수 있게 해줍니다. 특히 전력 소모 감소, 속도 향상, 설계 자유도 확보 등의 이점을 제공하여 AI, 모바일, HPC(고성능 컴퓨팅) 등에서 요구되는 고사양 칩 구현에 적합합니다. 산업 측면에서는 ASML이 사실상 유일한 EUV 장비 공급업체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으며, 해당 장비 한 대 가격이 약 2천억 원에 달할 정도로 고가입니다. 이에 따라 EUV 기술을 조기에 확보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 간의 기술 격차가 심화되고 있으며, 설계부터 공정, 소재까지 전반적인 생태계 전환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반면, DUV는 다수 장비 제조사가 존재하고 이미 상용화된 기술로 널리 퍼져 있어, 특정 파운드리 기업이 중소형 고객을 대상으로 DUV 공정 기반의 맞춤형 칩을 계속 제공하는 전략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향후에는 EUV가 점차 하이엔드 제품 중심으로 확대되며, DUV는 비용 효율 중심의 범용 제품 생산에 적합한 기술로 역할 분담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일부 기업은 EUV와 DUV를 병행하여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공정 방식도 개발 중입니다.
결론적으로, DUV는 오랜 기간 반도체 제조의 표준 기술로 활용되어 왔으며 여전히 중저가 공정에 적합한 기술입니다. 반면, EUV는 회로 미세화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하며 7nm 이하 고성능 반도체 제조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기술로 자리 잡았습니다. 두 기술은 공정 노드에 따라 보완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반도체 제조 기술의 진화는 이제 노광 공정의 정밀도와 생산성 확보 여부에 크게 좌우되고 있습니다. 향후 EUV 기술의 안정성과 생산성 향상이 계속된다면, 반도체 산업의 경쟁 구도는 더욱 치열해질 것이며, 장비·소재·설계 기술 전반에 걸친 혁신이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